2019 ~ 2020년도 사이(추정) 쓴 글입니다.
과거 함께 드관을 짰던 베로니카와 아이트라의 관계에 대한 아이트라 시점의 글이었으며, 기간이 꽤 지난 글인만큼 현 글과 차이가 많이 납니다. 개인 확인 목적으로 백업해둡니다.
네 허무는 나쁘지 않아. 삶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왜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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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트라 위스 폰 인텐티오. 아이트라는 그 명사名辭이자 사명使命인 문장을 읊었다. 그 어구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이자 음률이었으나, 상대적인 것이었으니... 아이트라는 늘 이것을 기꺼워 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기억 저 편의 한 여인은 그리 말했었다. 이름이 지어진 그때부터 그 사람은 명부에 명가名價가 적히노니, 명분名分을 중시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를 말했던 여인은 시간이 지나 저에게 다시 말했었다. 네 존재 가치는 네가 명작이 되는 것에 있으니, 인텐티오가 염원念願하는 것을 이루는데 네 의의意義를 갖추라고 말하였다. 아이트라는 그들이 원하는 가치를 따라서 오랜 세월을 넘기었고, 베로니카 아베르나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그녀를 만나 비로소 그 스스로에 대해 고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한 끗의 기대는 놓지 못하는 것이 그동안 그의 난문難問 같은 삶을 답문答問할 수 있는 편향偏向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지표였다.
"그렇지만요, 어머니. 그리한다면 저는 인텐티오 가의 일원인가요, 아니면 명품인가요."
삶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라고 하였다. 살아가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월을 살았고, 그 뜻을 이해한 후에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세월과 끊임없이 다투었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움직인다고 하지만, 아이트라는 인텐티오를 위해 움직여야만 하였다. 그것은 몸에 새겨진 각인이었다. 누군가가 계속해 새긴 낙인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이 남긴 상해傷害는 아이트라의 세계를 비좁게 만들었고, 그 비좁은 세계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너덜너덜해졌다. 먼 훗날 자신의 세계에 존재하는 상흔을 보며 아이트라는 살아가기 위해 움직이는 것에는 더없이 많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 감상은 아이트라에게 있어서 무관한 결과를 낳았다. 아이트라는 그 무형의 날 것을 무난하게 넘기었고, 그 상념은 그대로 종식되었다. 그렇게 끝났어야 하는 결과였다. 아이트라의 생애는 그렇게 마무리 지어졌어야 하였다. 아이트라가 가진 찰나의 의문은 아이트라의 세계를 바꿔버렸다. 본인이 원치 않는 결말이었다.
"로니, 나 대학에 다니고 싶어."
"..."
"나도 알아, 그냥... 한 말이야."
"그렇지만 만약에 말이야... 내가 그럴 수 있는 삶을 살았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다르겠지?"
바뀐 세계는 아이트라가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야 하는 피로 얼룩진 자리는 아이트라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자신이 그 의문을 품지 않았더라면, 자유를 포기하였더라면... 적어도 이런 삶을 살지는 않았겠지. 아이트라는 자유를 갖기 위해 사이퍼인 아이트라로 살아가야만 하였고, 그 결과 매일매일 전장에서 살았다. 자유의 대가가 또 다른 억압이 필요한 지옥이었다니. 아이트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붕괴하는 정신을 붙잡고 살았다. 그래도 과거 육체와 정신 모두 억압당하던 때와는 다르게 살만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 선택하기엔 아이트라는 이미 혈향 가득한 사이퍼가 되었고, 피로 범벅된 자신이 보이는 거울을 보며 마지못해 웃는 사람이 되었으니.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마지막이었다. 더이상 도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염원하던 것은 전장에 있어야 비로소 누릴 수 있었다. 아이트라 위스 폰 인텐티오가 아닌 아이트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아이트라는 웃었다. 더없이 환하게.
"제발 우리 이제 가자. 어디든."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 로니."
"아이트라, 정신 차려... 제발..."
"난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나는 내가 있을 곳에 있는 거뿐이야. 나는 드디어 내가 있을 곳을 찾았어."
"..."
"울지 마, 로니. 나는 제정신이야. 그러니까 아무 문제 없어."
아이트라의 염원은 이 불완전한 대치가 지속되야 얻을 수 있었다. 전장은 사이퍼인 아이트라를 두각 시키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그랬기에 아이트라는 처음 전장에 참여한 제 친우가 피 칠갑이 되어 나타났을 때도 웃어 보일 수 있었다. 오히려 울음으로 얼룩진 그 얼굴을 닦아주며 다정히 굴었다. 아이트라는 전장이라는 결말에 도착하여 제 민낯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이트라의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아이트라를 구원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아이트라 위스 폰 인텐티오가 아이트라로서 죽기 직전까지 계속될 명제였다. 아이트라는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차악을 생각하였다. 구원받을 수 없는 삶이라면, 아무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세계에서 평생 살아가다 이 모든 걸 끝내리라. 아이트라가 원하는 결말은 자유로 종결終結되지 못했다. 아이트라가 원하는 것은 사멸死滅되는 것이었다. 아이트라는 처음 전장을 겪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웃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이트라는 전장에서도, 그 바깥에서도 늘 웃었다. 그것이 유일한 진심이라는 마냥. 그렇게.
"로니, 부탁할게 있어. 만일 내가 전사한다면... 내 시체는 네가 처리해줘. 그랬으면 좋겠어."
"뭐...??"
"걱정하지 말고. 그냥... 혹시 모른 일을 대비하는 것뿐이야. 내 마지막은 아이트라인 삶으로 끝났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도와줄 거지?"
아이트라는 죄책감과 충격으로 가득 찼던 그 얼굴을 떠올렸다. 한때 아이트라 위스 폰 인텐티오가 구원자라고 생각했던 자, 그리고 아이트라의 소중한 친우. 아이트라는 제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 그를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 부탁은 하지 말았어야 했나..."
저의 사후가 거의 확정된 순간, 우습게도 스쳐 지나가는 주마등은 제 친우를 오롯이 비추고 있었다. 참사로 끝맺어질 사인死因을 생각하며 아이트라는 그제야 베로니카의 심정 일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너는 내 죽음 앞에서 눈물을 보일 것이다. 스스로의 잘못인 양 괴로움에 빠져 슬픔에 빠질 것이다. 네 탓이 아니라고, 이것은 나의 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제 친우에게 스스로 고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순간에 아이트라는 죽음과 마주하기 전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못다 한 고해성사에 곧 닥쳐올 죽음에 대해 미련이 생길 거 같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래도 너는 슬픔을 이겨낼 것이다. 내 죽음에 슬퍼할지라도 그 감정에 평생 휩쓸려있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결국 나를 기억 한 편에 묻고 또 다른 일상을 겪고 있겠지. 아이트라는 마지막으로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아이트라의 죽음에 울어줄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언젠간 잊힐 테니 다행이라고. 어떻게 보면 자만이자 오만이었다. 한 편으로는 자기 위로와도 같았다.
그 삶의 마지막, 아이트라는 힘이 빠지는 육체에 제정신 역시 놓으며 마지막 유언일 문장을 중얼거렸다.
"그래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
"그리고 이 다음 생에는 너와 함께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스스로 가득 찼던 기만으로부터 도망간 순간, 아이트라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트라가 가진 세계의 결말은 죽음이 아닌 자유로 끝났기에 아이트라는 마음 편히 죽음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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